
- 2011/12/09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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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0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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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2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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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만화가 중에, 타가메 겐고로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본인이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기도 한 게이 에로만화/삽화 전문 만화가로, 일본 국내 게이 만화계에서도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로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는 정식번역판 발매는 물론 몇번이고 전시회와 사인회가 열린 적도 있습니다.
사실 만화가 중에서도 에로만화는 작가 개인의 취향과 페티쉬가 강하게 반영되기 쉬운 장르인데, 타가메 겐고로의 경우에도 키워드가 확실한 작가에 속합니다. 1. 곰(Bear. 체모가 많고 전체적으로 굵직건장한 체형의 남성을 의미.) 2.SM 3.귀축.
...그러니까 요는 위 이미지가 타가메 겐고로로 검색 때려서 나오는 그림 중 그나마 제일 건전한 거라...대략 그런 작가라고 알아두시고 자신 없으면 정말로 검색하지 마세요. 저도 처음 접했을 땐 좀 놀랐음.
아무튼 이런 하드한 게이 에로물을 그리는 만화가가......대략 오늘 오후 4시경에 필명을 부모님께 들켜버렸다고 트윗.
이하 트윗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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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비밀로 하고 있던 펜네임이 들켰음 나우ㅎ
구글놈ㅋ
참고로 전 게이라는 건 딱히 숨기지 않았고 (단지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건지, 오늘 새삼스럽게 재확인하셨다고 할지ㅎ) 에로 그림을 그린다고도 했었지만, 구체적인 펜네임은 가르쳐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근 구글 검색을 배운 부모님이 마침내 찾아내고야 말았고...어머니가 "아버지가 네 펜네임 찾아내셨어!"라고 불러서, 뭐얏 하고 생각하면서 거실에 갔더니, 아버지가 "이거지!" 하고 위키피디아의 제 항목을 보여주셔서, 끼약~! 했던 것입니다^^;
위키피디아를 본 어머니와 나의 대화: "너 게이였니?" "그래요. (전에도 말했잖아요!)" "어머...그럼 같이 사는 00씨도 그렇고, 그런 관계니?" "그래요." "어머나...그럼 호적에는 올렸니?" 아니 그게 가능하다면 고생하지 않았겠죠ㅋㅋㅋ <-지금 이 시점ㅎ
더해서 어머니가 "형들은(형과 형수 부부) 아니?" "네." "어머, 언제부터?" "꽤 예전부터요." "어머나...그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만 숨겼구나!?"...란 느낌으로 힐책당했습니다. 죄송^^;
뭐, 펜네임이 들킨 건 어쩔 수 없으니, "실수로라도 단행본 살 생각은 하지 마세요"라고 못 박아 두긴 했지만...지금쯤 이것저것 구글링 하면서 두분이서 얘기하고 있을 것 같아서, 아아아아아아 무섭다...^^;
왠지 "자위하다가 부모에게 들킨 고딩"같은 기분 나우 (´・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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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게이라는 거나 에로 만화가라는 사실 정도는 커밍아웃하고 있고, 부모님이 의외로 쿨한 반응이라 (어머님 좀 귀여운 분인 듯...ㅎ) 생각보다는 무난....하게 끝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단지 구글 이미지 검색에 타가메 겐고로 입력하면....거시기...거시기하고도 참 거시기한 이미지의 향연이라 OTL....
결론은 구글....무서운 아이!
- 2011/10/3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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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최대한 멀쩡하고 번듯하게 꾸며진) 사체 사진에 대한 내용입니다.
2. 따라서 (최대한 멀쩡하고 번듯하게 꾸며진) 사체 사진이 다수 나옵니다.
3. 미성년자와 영아의 사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4. 비위가 약하거나 최근에 주위의 소중한 사람을 잃은 분께는 비추합니다. 아니 가능한 보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정말로 웬만하면 보지 마세요. 충격과 공포와 슬픔의 3연타를 당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고하지만, 정말로 자신 있고 담력 있는 분만 보실 것을 권합니다.
보기
이 사진을 자세히 보세요. 1888년 캐나다 페트롤리아 시에서 촬영된 사진입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옛날 흑백 가족사진입니다. 사실 당시 기준으로써는 평범한 가족사진이 맞습니다. 약간 특이한 점이 있다면 가운데에 서 있는 소녀(아마도 부부의 딸)가 사실은 죽어있는 시체라는 사실 정도겠지요. 일단 눈이 어딘가 어색하죠? 사진사가 눈꺼풀 위에 눈동자를 그렸거나 사진 위에 그려서 그렇습니다. 부모에게 기대고 있는 손도 (사실 이 정도면 매우 그럴듯하게 연출된 수준급의 사후사진입니다만) 자연스러운 듯 하지만 어딘가 굳어 있는 느낌입니다.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는 표시는 발이 약간 떠 있고, 자세히 보면 지지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물론 사진술 초기에 발명된 은판사진은 워낙 시간이 많이 걸려서 살아있는 사람도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리기에, 전문가가 지적하기까지 조상의 사진이 사실 사후에 찍은 것임을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게다가 의도적으로 살아있는 것처럼 연출된 사진이기에 더욱 알기 어렵지요.

여기서는 딸의 눈을 뜨게 해놓고 의자와 부모가 양 옆에서 딸의 몸을 받치고 있어서 자연스러워 보임.
뺨에 홍조를 더하는 것은 흑백사진 시대에 산 사람에게도 자주 사용하던 연출.

...그리고 연출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사례.
이런 식으로 사체를 촬영한 사진을 사후사진 (postmortem photography) 혹은 추모사진 (memorial photography)이라고 합니다. 이 전통은 19세기 중반 빅토리아 시대까지 올라갑니다. 즉, 사진촬영이 어느 정도 대중화된 시기와 역사를 함께 한 것이죠.
그럼 대체 왜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지금 기준으로 봤을 때) 이런 악취미적인 사진을 찍었을까요? 성적으로 억압된 데다가 장례문화 페티쉬까지 있는 변태들이라서? ...물론 특유의 장례문화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앞서 염두해야 할 점이 몇가지 있습니다.
일단 정리하자면
1. 사진은 신기술이라 낯설고 제법 비싸기도 했고
2. 그래도 화가를 고용해 초상화를 그리게 하는 것보단 저렴했으며
3. 피사체의 대다수는 아동이나 미성년 자녀였고
4. 의뢰인들은 중산층 이상이었으며
5. 당시에는 영아/아동사망률이 매우 높았음.

이상의 다섯가지 배경을 고려하면 답은 쉽게 나옵니다. 일단 생전에 자기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사람이 매우 적었고, 수명이 짧은 영아나 아동의 경우 더더욱 그럴 확률이 낮았죠. 중산층이면 사진사를 고용할 경제적 여유도 있었고 노동력으로써 아이가 필요해 많이 낳았던 농가의 가족과는 달리 제한적으로 낳아서, 상대적으로 아이에 대한 애착이 강했을 수도 있었구요. 무엇보다 생전의 초상화나 데스마스크처럼 죽은 사람의 모습을 인공적인 형상으로 영원히 남기고 추모하고 기억하려는 현상은 인류 보편적인 욕구입니다. 그리고 사망률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죽음은 현대사회만큼 터부시되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진들은 다른 가족사진과 함께 거실의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어 있기도 하고, 친척들에게 일종의 부고장을 겸해 보내지기도 했습니다.

초기 사후사진은 가능한 생생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잠 들거나 쉬는 듯한 포즈가 다수.
초상화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초기 사후사진이 (굉장한 시간과 공이 들어가는데도) 무리하면서도 "살아있는 듯한" 모습의 연출에 집착했던 이유는 회화의 전통에 있습니다. 사실 살아있는 사람을 찍은 사진도 초상화처럼 연출되고 종종 무대적인 복장과 소도구가 활용된 것도 많았습니다. 즉, 사진은 초상화나 회화를 (비교적 저렴하고 더 정확하게) 대체하는 매체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따라서 망자를 촬영할 때에도 평범한 초상화처럼 생생한 모습으로 연출되는 것이 당연시되었으며, 분위기 및 연출상의 "기품"이 중요시되었습니다.

이런 안쓰러운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매우 불편한 표정의 소녀(죽은 소년의 여동생)가 인상적.
99%의 확률로 부모들 눈에는 아이들끼리 찍는 게 정겹고 훈훈해 보여서 강요당한 것으로 추정됨.
요즘에야 아동학대로 체포+피해아동에겐 장기간 정신과 치료가 처방되겠지만 아동인권 개념이 부족한 시대라;
다행히도(?) 1900년 코닥이 조작도 쉽고 가격도 저렴한 브라우니 카메라를 발매하면서 장례식같은 거창한 계기가 없어도 자주 편리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아마추어 사진-"스냅샷"의 보편화죠.
이렇게 생전에도 충분히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신기술의 보급 덕분에 사후사진의 (언제까지나 현대인의 편협된 관점으로 봤을 때) 기이하고 으스스한 전통은 막을 내렸습니다--
...라고 마무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놀랍게도...아니 사실은 당연하게도 (일반인이 촬영한 추모 목적의) 사후사진은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됩니다.
초기 사후사진과의 차이점이라면 사진기술의 발전과 보편화로 회화적 연출이 퇴색되고, 좀더 리얼리즘이 추구되면서....혹은 죽음에 대한 감수성이 변했기 때문에, 번거롭게 살아있는 듯한 연출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가장 두두러지는 특징이 '관'이 촬영되었다는 점인데, 초기 사후사진은 거의 관을 찍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듯한 연출에 완전히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후기의 사후사진은 망자가 관에 담겨 있거나, 혹은 침대에서 죽은 직후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훨씬 자연스럽고, 현대적 관점으로 봤을 때도 거부감이 덜합니다.

러시아의 가족 장례식. 고인의 남편이 연미복을 차려입은 모습이 의아해 보일 수 있는데, 장례식에는 가장 좋은 옷을 입는 것이 예의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삭발시킨 것도 장례의례 중 하나.
특히 유럽 대륙에서는 유난히 가족단체사진이 많은데, 사실 장례식만큼 온 친족이 다 모일 이벤트가 드물긴 했고, 이왕 모인 김에 다 함께(고인 포함해서) 사진 찍읍시다 치즈~!...같은 의도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라트비아의 장례식인데 문상객들의 배치에 의도적인 차별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서유럽식 부르주아 복장을 한 가족들은 고인의 머리 편에, 전통적인 시골 차림의 가족들은 발 쪽에 자리잡게 한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후사진은 서구에만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1940년대 필리핀에서 촬영된 장례식/가족사진입니다.
이러한 사진의 배경에는 카메라가 편리해지고 널리 보급화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영미권 한정으로 그랬다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전히 사진기가 비싸고 흔하지 않아서,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진을 찍을 일이 없으며, 중산층 빅토리아시대 영국인처럼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싶은 기록보다는, 온 가족이 그 자리에 모였다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더 의미있는 사회였던 것이지요.

복장이나 건물로 짐작해 미국이 거의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아버지와 아기의 사진

1924년 2월 갓 태어난 아이와 몇일 간격으로 사망해 같은 관에 뉘여진 흑인 여성의 사진

20세기 미국으로 추정되는 장례식 사진으로 드물게 유족(고인의 부인)의 감정적인 모습이 촬영된 사진
그리고, 아마 현대인에게는 가장 "익숙한" 종류의 사후사진이 있습니다.
범죄증거로써의 사체 사진이죠.

1906년 미국에서 파슨즈 일가족이 20세 청년에게 잔혹하게 살해되어 (살해 동기는 토지 거래가 만족스럽게 성사되지 않아서인데, 거래를 마치고 이사를 가던 가족을 뒤쫓아 우선 가장의 다리에 총을 쏴 쓰러뜨린 뒤 개머리판으로 때려 죽이고, 아내와 아이들도 총으로 구타해 죽였다...는 기사와, 아이들의 경우는 장난감 칼로 목을 그었다는 기사, 아내가 임신중이었다는 기사와 그렇지 않다는 기사 등 흉기나 사체의 상태에 관한 보고는 다소 분분하지만) 강물에 버려진 후 어부가 건져올린 시신들을 침대에 뉘여놓고 촬영한 사진입니다. 순수한 범죄기록이 아니라 추모 의도도 있었다는 것은 마른 옷을 입히고 (혹은 옷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을 수도 있음) 손을 모으게 하고 평온한 모습으로 마치 잠든 것처럼 온 가족이 가지런히 침대에 뉘여져 있는 연출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추모사진 특유의 고인에 대한 존엄을 갖추면서 기품을 부여하려는 속성과, 끔찍한 최후를 짐작할 수 있는 얼굴의 흉터들이 대조되어 묘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개인적으로 이 사진의 용도와 관점은 근대적인 죽음과 현대적인 죽음 사이의 절묘한 교차점에 있는 것이 하는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한편으로는 지역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기 위해 촬영되었을 선전적 의도도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확인된다면, 더욱 다양한 의미를 담은 사진이 되겠지요.
(참, 살인범은 즉시 검거되었고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두 번 매달았다는 기록을 보면 곱게 죽지는 못한 듯 합니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추모 목적의 사후사진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사진촬영이 흔해졌기도 했지만, 죽음에 대한 관점이 변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합니다. 의학의 발달로 사망률이 대폭 줄어들어, 죽음이 전보다 낯선 것이 되어서 터부시되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친 트라우마로, 빅토리아 시대의 죽음을 무대적으로 미화하고 희석시키는 감수성이 함의를 잃었기 때문일까요? 물론 유명인의 사후사진은 (관 속에 평온하게 담긴 모습이든 반군들에게 살해당한 처참한 몰골이든) 남아 있습니다. 공적인 사후사진이지요. 이에 비해 사적인 사후사진은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하긴 지금 당장 장례식에 난입해 관 뚜껑을 열고 폰카를 들이대면 유족들과 문상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해 보면......정말 시대가 많이 변했음을 짐작할 수 있지요^^
처음 사후사진을 봤을 때는 고인들에게는 실례지만 불편하고 오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특히 초기의 산 사람처럼 세워두거나 앉혀두고 눈을 뜨게 한 사진이나, 관을 선물상자처럼 포장해 놓은 아기 사진(사실 사후사진 중에는 그런 아기사진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여러분의 마음의 평안을 고려해 일부러 비중을 줄였습니다)은 유난히 불편했습니다. 아마 죽어있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가리려는 노고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런 노고 때문에 훨씬) 사체라는 점이 부각되서, 마치 악취를 가리려고 강한 향수를 뿌리는 것이 오히려 그냥 악취보다 더 역한 그런 느낌이겠지요. 하지만 사진을 의뢰한 유족, 때로는 같이 찍히기도 한 유족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그렇게 기괴하다고만 볼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후사진, 추모사진의 별칭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였지만 사실은 망자의 가장 생생한, 살아있던 모습 그대로를 기록하고 추억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진사들도 초상화적인 분위기와 망자에게 "기품"을 부여하려는 의도로 갖가지 정성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다른 인식이 존재하던 시대와, 장례식이 결국은 산 자들의 의식이라는 것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소 불편할 수도 있지만, 이런 사진들에도 일종의 미학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다양한 사후사진을 인터넷 검색만으로 쉽게 구한 것은, 사후사진을 집중적으로 수집하는 콜렉터들이 있고 전용 박물관이 몇 곳이나 있기 때문이죠. 다락방을 뒤지다가 조상님 사진이 나왔는데, 나중에 전문가에게 보이고 나서야 사후사진인 것을 알았다는 사례도 제법 흔합니다. (이베이에 팔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는 유족이나 문상객이 같이 찍힌 사진이 인상적입니다. 카메라 앞에서 긴장해서인지 크게 통곡하는 것이 서구에서는 일반적인 장례예법이 아니라 감정을 억누르고 있어서인지, 굳어 있는 표정이 많은데, 그만큼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인과는 어떤 관계였는지 궁금해집니다.

설마, 죽은 아이가 생전에 못된 골목대장이라 다들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
......그냥 사진 찍는 것이 드물고 즐거워서 웃는 것이라고 짐작하겠습니다^^;
덤으로, 간간히 애완동물을 추모하는 사후사진도 많이 나와서 하나 더해봅니다. 왠지 개 사진밖에 없지만요. 빅토리아 시대 중산층은 개를 더 좋아했나 보죠?


이딴 짓을 하고 있었지(...)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Post-mortem_photography
http://thanatos.net/
http://www.petroliaheritage.com/people.html
http://www.paulfrecker.com/collections.cfm?pagetype=library&typeID=1&myPage=1
http://thechaosofdeath.blogspot.com/2008/03/jodie-hamilton-and-mourning-photograph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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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0/21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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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글수 : 1

디즈니의 2006년도 단편 애니메이션 <성냥팔이 소녀>입니다. 날씨도 추워졌고 해서 올려봅니다.
초기단계에서는 <판타지아 2000> 이후의 판타지아 신작 용으로 기획된 단편 중 하나였는데 모종의 이유로 계획이 취소되고, 별도 단편으로 제작되어 2006년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 공개되었습니다.
원래 판타지아용 작품이었기에 대사가 없이 보로딘의 현악합주를 위한 야상곡 2번이 BGM으로 깔려 있습니다.
감독은 로저 앨러스, 프로듀서는 돈 한입니다.
원작의 배경이 덴마크에서 러시아로 바뀌었지만 (그리고 러시아의 추위를 생각하면;;)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게 따라갑니다. 전체적으로 흑백톤을 유지하며 색채를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한 점, 투박해 보이지만 시대고증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럴듯한 성냥의 모습이나 주인공 소녀의 움직임, 자세 등에 사소해 보이지만 리얼리티가 들어가 있어서 단순하면서도 섬세하게 잘 만들어진 수작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사실 전 이 작품의 존재를 최근에야 그것도 우연히 알았습니다; 디즈니와는 애증관계가 있어서 고전 단편도 다 봤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실수가...그런데 알고 보니 이 단편 자체가 지극히 제한된 형태로만 구해볼 수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그러니까...<성냥팔이 소녀>는 <인어공주> 플래티넘 DVD에만 수록되어 있습니다; 본가에 인어공주 비디오(옛날옛적에 존재했던 사각형의 검은 매체입니다)를 소장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DVD판을 구매할 생각도 안해서 놓쳐버렸던 것이죠-_-; 이것도 사실 팬심이 딸린 건가...
어쨌든 음악과의 조화, 영상미, 연출 모든 점에서 훌륭한 수작이고, 6분 남짓밖에 안 하니 잠깐 짬을 내서 보고 가셔도 좋을 듯 합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지만 책임지지 않습니다^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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