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은 많이 미움 받는가?


스타워즈의 날을 기념해 번역해 봤습니다.

필자와 동의하는지 여부는 넘어가더라도, 적어도 왜 대다수의 오리지널 삼부작 팬들이 프리퀄에 격렬히 반응했는지 자비 없이 잘 정리가 되어있는 글이라서 꽤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왜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은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가?]



왜냐면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은 오리지널 삼부작만큼 좋은 영화들이 아니었고, 그에 비해 기대치는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또한 스타워즈 프리퀄은 그 자체만으로 매우 형편없는 영화들이기도 하다. 흔히들 프리퀄이 오리지널 삼부작을 망쳤다고 말하지만, 애초에 오리지널 삼부작이 마련해준 지지층이 없었더라면 프리퀄이 흥행조차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만약 [보이지 않는 위험]이 최초의 스타워즈 영화였다면 스타워즈는 지금쯤 극소수의 팬들이나 기억하는 잊혀진 영화 시리즈가 되었을 것이다.

오리지널 삼부작의 장점 중 하나는 단순한 선악 대결구도다. 다스베이더와 황제는 사악했고, 루크와 그 일행은 악하지 않았으며, 나쁜 놈들은 착한 놈들을 없애려고 전쟁을 일으켰고, 결과는 좋은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프리퀄은 무역분쟁에 대한 내용이었다. 무역분쟁에 관한 좋은 영화가 있다면 하나 대봐라. 인물들이 서성대며 대화하거나 상원회에서 투표하는 장면이 많았고 라이트세이버로 재밌는 일을 하는 장면은 적었다. 한마디로 지루한데다가 더 나쁜 점은 각본이 나쁜데 지루하다는 점이다. 이왕 무역분쟁에 관한 대화를 본다면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톡 쏘는 대사를 주고 받는 장면을 보고 싶다. 처참한 대사를 들으면서 “왜 저 사악한 자본자들은 아시아 억양으로 말하는 거지? 대체 왜 그렇게 설정한 거지?”같은 딴 생각이나 하고 싶지는 않다.

오리지널 삼부작은 영화사에 남을만한 악역을 낳았고 카리스마적인 영웅 캐릭터들과 대립시켰다. 2003년 미국 영화연구소는 역대 가장 위대한 영웅 캐릭터와 악역 캐릭터 순위를 매겼다. 다스베이더는 악역 3위에 올랐고, 한 솔로는 선역 14위, 오비완 케노비는 37위에 올랐다. (원작 삼부작에서 알렉 기네스가 연기한 버전의 오비완) 프리퀄 캐릭터는 당연히 한명도 없었다. 그나마 프리퀄에서 가장 흥미로운 악역이라고 칠 수 있는 다스마울의 출연분량은 15분 남짓이고, 유일하게 흥미로운 선역은 오비완이지만 그마저도 맥그레거가 알렉 기네스 흉내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삼부작은 훌륭한 스토리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결말을 주었다. [제다이의 귀환] 후반부에 주인공들은 적의 덫에 걸리고 만다. 한과 레이아는 엔도르에서 붙잡혔고, 함대는 데스스타에 의해 폭발당하기 직전이었으며, 루크는 다크사이드로 넘어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주인공들은 지고 있었고, 쉽사리 타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세 번째 프리퀄의 결말에서는 네 명의 주역들 사이에 매우 길고 지리한 라이트세이버 결투가 있었다. (요다 VS 팰퍼틴, 오비완 VS 아나킨) 그리고 누가 살아남을지는 뻔했다. 긴장감도 박진감도 없고, 프리퀄이 다 끝났다는 안도감만이 있었다.

사실 어떤 추가적 짜증 요소가 없었더라면 끔찍하게 형편없는 대사와, 의미 없는 플롯과, 캐릭터성의 부재 정도는 잊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자자 빙크스는 모든 의미에서 큰 실수였다. 전혀 웃기지도 않았고, 거의 모든 장면에 삽입되는 바람에 더 큰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자자는 다른 인물들이 대화하는 장면 배경에서 덜렁댔고, 똥을 밟고, 방귀를 맞고, 한마디로 최저급의 싸구려 개그 캐릭터처럼 행동했다. 심지어 자자에겐 만회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아서, 끝까지 용기나 지혜를 드러내는 장면도 없이 그냥 영화 내내 망한 캐릭터였다. 원작 삼부작에는 순수한 개그캐릭터는 필요 없었다. 전개 과정에 직관적인 개그씬을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자는 두 명의 엄청나게 짜증나는 아나킨들과 함께 프리퀄 삼부작 내내 짜증덩어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증오를 일으키기엔 부족하다. 프리퀄은 지루하고 짜증나고 영혼이 없지만, 그런 영화는 수없이 많다. 프리퀄이 미움받아야 하는 이유는 원작 삼부작을 깎아내리기 때문이다. 프리퀄이 나오기 전까지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포스의 다크사이드로 끌려온 선량한 파일럿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아나킨이 징징대고 짜증나는 아이였고 연기 못하는 낭만적인 바보에다가 하필이면 C3PO와 R2D2의 절친을 디자인한 놈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다스베이더는 속죄의 순간이 주어진 악인 중의 악인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폭소가 터질만큼 끔찍한 “안돼애애애ㅐㅐㅐㅐ”라고 외친 가망 없는 루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프리퀄은 그냥 나쁜 영화들이다. 게다가 좋은 영화들을 악화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니 당연히 미움받는 것이다.


도검난무 논란-오키타 소우지와 도죠 히데키는 같은 칼을 사용했다? 잡상


[도검난무]는 DMM에서 서비스하는 웹브라우저 게임으로, 역시 DMM 서비스 게임인 [함대 컬렉션 (통칭 [칸코레])]와 유사한 시스템을 채용한 카드 콜렉팅+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칸코레]와의 가장 중요한 차별점이라면 군함이 아닌 역사상의 도검(창과 나기나타도 있긴 함)을 의인화한 남성 캐릭터 “도검남사(刀劍男士, 그런데 男士와 男子의 일본어 발음이 동일하게 “단시”라서 팬덤에서는 ‘도검남자刀劍男子’와 혼용되기도 함.)”를 내세워 여성층을 노렸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도 여성향 캐릭터 콜렉팅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성향에 비해선 압도적으로 수가 적었고, 그래픽이나 음성 등 객관적 퀄리티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부실해 보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던 시장에 [도검난무]는 [칸코레]의 검증된 시스템,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 캐릭터성을 잘 살려낸 대사, 풀 음성, 그래픽([칸코레] 식의 대미지를 입으면 옷과 갑옷이 벗겨지는 그래픽 외에도 농사나 말 돌보기같은 잡무를 시키면 나오는 작업복 그래픽이 있음)을 도입하고, 도검이라는 소재의 특징을 이용해 원래부터 많았던 전국시대 및 신선조 팬덤도 자연스럽게 포섭한 결과 올해 1월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한국에서도 [도검난무]를 플레이하거나 [도검난무]의 2차 창작물을 찾아보며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아무래도 [칸코레]와 동일한 회사가 서비스하고 있고 일본적 색채가 강한 무기를 의인화한 게임이다 보니 논란도 많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커뮤니티나 게시판은 들어가지 않고 트위터만 이용하지만, 그런 게시판에서 파생된 논란이 타임라인에도 종종 보일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보이는 화제는 “카슈 키요미츠(加州清光)는 A급 전범 도죠 히데키의 검”이라는 주장입니다. 카슈 키요미츠는 게임을 시작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다섯 자루의 타도(打刀) 중 하나로 (역시 원래부터 여성층에 인기가 많던) 신선조 대원 오키타 소우지의 칼이며, 팬덤에서는 미카즈키 무네치카 다음으로 2, 3위를 다투는 인기 캐릭터입니다. 


“신선조의 오키타 소지, 태평양 전쟁으로 유명한 도죠 히데키가 애용했습니다.”


논란의 짤방에서 나오는 이 주장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카슈 키요미츠”라는 칼을 오키타 소우지와 도죠 히데키가 애용했다고 하면 사실이지만, “85번 카슈 키요미츠” 즉 [도검난무]의 카슈 키요미츠가 처음엔 오키타 소우지가 애용했다가 나중에는 도죠 히데키가 애용한 검이라고 하면 거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뜻 궤변 같지만 사실입니다. 즉 두 인물 다 “카슈 키요미츠”라는 칼을 소장하였으나, 동일한 칼은 아니며, 제작자와 이름만 같은 동명이도同名異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입니다. 

사실 논란에서 출처로 삼고 있는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카슈 키요미츠 항목을 살펴봐도 답은 나와 있습니다.


카슈 키요미츠 (생년 불명~1687년) 카슈(현재의 카나자와 지역)의 도공. 정식 명칭은 카슈카나자와츄 쵸베후지와라키요미츠 (加州金沢住長兵衛藤原清光). 카슈카나자와츄 쵸베후지와라키요미츠는 6대째 ‘키요미츠’로, 1대 키요미츠는 “코지로(小次郎)”라고 하였으며 이즈미무라(泉村)에 살았다. 6대 쵸베후지와라키요미츠는 원래 도공 마을에 살았으나 별안간 비인소옥(非人小屋: 일본의 천민계급에 해당하는 비인非人과 그 밖에 걸인, 빈민 등을 수용한 주거지)에 들어가 그곳에서 여러 자루의 명검을 만들었다.
카가 번주 마에다 츠네노리(前田綱紀)가 1670년에 세운 빈민수용소에 일시적으로 살았기에 “걸식 키요미츠(乞食清光)”라고 불렸다. 1687년 서거. 신도기(新刀期: 1596년 이후로 만들어진 일본도를 신도新刀라고 함)의 도공. 
그의 검을 사용한 유명인으로는 신선조의 오키타 소우지나 도죠 히데키 등이 있다.
신도新刀 카슈 키요미츠는 여러 대(代)가 있으며 카슈 외에도 동명이인의 도공이 있기에, 칼자루에 키요미츠(清光)가 새겨져 있다고 비인 키요미츠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6대 키요미츠에 이어 7대 키요미츠도 비인소옥에 들어갔으나, 8대 이후부터는 코다츠노(小立野) 토취장(현재의 카나자와 대학 의학부 근처)에 살며 칼을 만들었다. 
9대 키요미츠는 후지에세이지로(藤江清次郎). 막부 말에는 그 지역의 대표적인 도공이었으나 1876년 불우하게 생을 마친 인물이다.
1967년 4월 7일, 카나자와시 카사마이마치의 제 4 토지구획 정리조합이 비인소옥이 있던 장소 부근에 “비인 키요미츠의 비”를 세웠다. 1.5미터 높이의 원통형 화강암 위에 곧날 모양으로 만든 청동 조각상이 올려져 있다. 제작자는 카나자와 미술공예대학교수를 지낸 이타사카 타츠지(板坂辰治).  


“...검을 사용한 유명인으로는 신선조의 오키타 소우지나 도죠 히데키 등이 있다.” 부분만 발췌되어서 논란의 근거가 제공되고 있지만, 항목 전체를 보면 특정한 한 자루의 칼이 아니라 카슈 키요미츠라는 도공들에 대한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장인이나 전통예술 전수자들은 대대로 이름을 물려받고 사적으로는 다른 이름이 있어도, 공적으로는 대대로 내려오는 이름을 걸고 몇 대째 000라며 작품을 발표하거나 공연을 합니다. 특히 도검의 경우 제작자의 이름이 자동적으로 붙는데, 이 이름을 명銘이라고 합니다. 즉 여러 명의 도공 카슈 키요미츠 중에서 가장 ‘네임드’인 6대 키요미츠가 만든 여러 자루의 칼 카슈 키요미츠 중에서 오키타 소우지가 사용한 것도 있고, 도죠 히데키가 사용한 것도 있는 것입니다. 

일본 도검의 이름에 대해 더 추가 설명을 하자면, 제작자가 명확한 경우(혹은 명확하다고 주장하는 경우) 기본적으로 붙는 명銘과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옵션 이름 호号가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명銘은 그 칼을 제작한 도공의 이름이며, 제작자를 분명히 하기 위해 칼자루에 이름을 새기던 관습에서 비롯됩니다. 사실 도공의 이름만으로 부르는 것도 극히 간략화된 형태로, 도명의 풀네임은 도공의 이름 외에도 출신지, 제작년도, 때로는 의뢰인이 들어간 매우 긴 이름(예: 九州日向住国広作 天正十八年庚刁弐月吉日平顕長)으로 기록에서 해당 칼을 구체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합니다. 반면 호号는 도공이나 칼의 소유주 등이 붙인 고유명입니다. 사실 일본만의 독특한 작명법도 아닌 것이, 스트라디바리우스 악기도 기본적으로는 전부 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불리고, 그 중에 몇 개는 sobriquet라는 고유명이 붙기도 합니다. 가령 같은 [도검난무] 캐릭터 중에는 쿠니히로라는 이름이 들어간 캐릭터가 세 명 있는데, 타도 야만바기리 쿠니히로山姥切国広, 태도(太刀) 야마부시 쿠니히로山伏国広, 그리고 신선조 부장 히지카타 토시조가 애용했다는 와키자시(脇差) 호리카와 쿠니히로입니다. 



세 자루 다 저명한 도공 호리카와 쿠니히로堀川国広가 만든 칼로 알려져 있지만 유독 한 자루만 “호리카와 쿠니히로”라고 표기되는 이유는 야만바기리와 야마부시는 각자 고유명이 붙여졌지만, 히지카타의 와키자시에게는 따로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진품 쿠니히로가 아니라는 의혹도 있어서 캐릭터 대사에도 이 점이 반영됩니다. 다른 신선조 검들인 (그리고 짝퉁 의혹이 가장 강한) 나가소네 코테츠長曽祢虎徹,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和泉守兼定, 야마토노카미 야스사다大和守安定 역시 호가 없어서 명으로만 표기된 도검들이고, 사카모토 료마의 호신검 무츠노카미 요시유키陸奥守吉行, 어전시합의 투구 깨기 일화로 알려진 도타누키 마사쿠니同田貫正国도 마찬가지로 호가 없고 특정한 유명인이 사용한 메이커 도검, 아니면 유명한 일화에 연관된 검이라는 식으로 캐릭터를 잡은 경우입니다. 

이 쯤 되면 [도검난무]의 캐릭터 작성 패턴이 대략 뻔히 보이는 게, 대다수는 호가 있는 도검들이 나오고(그 이름 뒤의 사연이나 이름 자체만으로도 캐릭터 만들기가 쉬우니까), 다음엔 고유명은 없어도 유명인이 사용했거나 유명 일화가 얽힌 도검을 등장시켜 주인의 인기에 편승(!)시키는 전략입니다. 여하튼 [도검난무]의 카슈 키요미츠는 “6대 키요미츠가 만든 오키타 소우지의 검”이고, 오키타 소우지와는 달리 여자 오타쿠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는 도죠 히데키와의 관련성은 전혀 묘사되지 않습니다. 군복스러운 복장이 도죠에 대한 오마쥬라는 의혹도 있지만 아직 공식에서 밝힌 바는 없고, 그보다는 같은 오키타 검으로 전형적인 신선조의 푸른 하오리 차림인 야마토노카미 야스사다와 구분하는 한편, 디자인적으로는 상당히 19세기적 비실용성이 풍겨 나오는 구식이라(긴 상의, 쓸데없이 많은 단추 등) 도죠가 군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20세기 초반 군복보다는 무진전쟁 때 신선조 및 막부군과 신정부군이 입은 과도기 단계의 서양식 군복이 모티브인 것 같습니다. (특히 사진으로 남아 있는 히지카타 토시조의 군복)

개인적으로는 힐이 더 충격적이었음.


물론 그럼에도 여러 자루의 카슈 키요미츠 중에 오키타가 사용한 것을 나중에 도죠 히데키가 물려받았을 수도 있지 않느냐! 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요. 오키타의 카슈 키요미츠도, 도죠 히데키의 카슈 키요미츠도 현재 행방이 불분명하고 도죠가 카슈 키요미츠를 얻은 경위(가보로 내려온 칼이라는 설도 있는데 불명확하고, 그나마 확실한 것은 패전 후 도죠 히데키의 과부가 팔려고 긴자의 고미술품 가게에 내놓았지만 반년 동안 팔리지 않고 진열된 채 먼지만 쌓였다는 회고)도 불확실합니다. 카슈 키요미츠 관련 2차 창작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케다야 사건 이후 카슈 키요미츠가 만신창이가 되어 수리하려고 내보냈으나 고칠 수가 없었다는 설”도 역사가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는 기록에서 나와서 근거가 모호합니다. 반면 두 자루가  동일 검이라는, 즉 오키타의 검을 나중에 도죠 히데키가 얻었다는 명확한 증거 역시 딱히 없습니다. 그리고 도공 카슈 키요미츠가 만든 칼은 한 두 자루가 아니며, 따라서 서로 다른 칼이라고 보는 것이 동일 칼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근거가 명확합니다. 오키타 소우지의 사망년도가 1868년, 도죠 히데키의 부친 도죠 히데노리는 1855년에 태어났으니까 굳이 동인지를 쓰겠다면 쓸 수도 있겠지만 둘을 잇는 사료적 접점은 없습니다. 물론 우연의 일치라도 하필 전범과 같은 메이커의 물건이라는 데에 혐오감을 가지거나, 일단 무기의 의인화라는 점 자체가(특히나 실전 사용률=살상률이 매우 높았던 신선조의 무기니) 싫을 수는 있습니다만, 일본도의 작명법에 대한 오해나 의도적 곡해로 잘못된 지식이 퍼지며 도돌이표식 소모적인 키배, 진실공방의 근거가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정리해 보았습니다. 차후 건설적인 논쟁에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도검난무]가 까여야 할 포인트는 콜렉팅과 노가다 외에는 즐길 거리가 별로 없다던가 아마도 그걸 개선하려고 새로운 보스 시스템을 추가했으나 신규 서버가 열린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그것도 강제적으로 모든 맵에 나오게 만들었다던가 고치라고 욕을 먹어도 절대 보스 전용맵이나 사라지는 장치를 안 넣은 아무래도 폭주 기미의 시바무라 유리로 추정되는 고집이라던가 스토리적으로도 아귀가 맞지 않게 되어버렸다던가 전체적으로 등신같은 운영이라던가 등등 굉장히 많기도 하구요.
 


무쌍시리즈 일러스트 합작 발표


몇 달 전부터 트위터에서 합작(주로 일러스트)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특정 테마를 가지고 여러 사람들의 작품을 한 온라인 공간에 모아 전시하는 식인데, 마침 요즘 진삼국무쌍7을 즐기던 차라 해외의 무쌍 관련 팬아트를 찾아보다가 국내 무쌍 팬아트 합작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간단히 말하자면 제가 무쌍 팬아트를 잔뜩 보고 싶었던 사심입니다^^;) 혹시나 사람이 안 모일까 해서 친분이 있는 지인들과 동생들도 끌어들였는데 다행히 협조적이라 처음에는 이 분들의 이름부터 올리고 모집을 시작했는데....

합작 모집 페이지: http://collabo12.tistory.com/1

물론 꽤 오랫동안 팬층을 보유한 무쌍시리즈라 어느 정도 인원수는 모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순식간에 스무 작품이 넘고...당황해서 다른 합작들에서 이따금 보이듯이 감당할 수 있는 숫자로 제한할까도 했지만 30점이 너어간 시점에서 어차피 무쌍은 머릿수 게임인데 갈 때까지 가 보자는 오기가 들어서 기한까지 모집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모집기간 일주일 동안 모인 결과는 50명이 신청해서 71점. 이 중에서 최종적으로 모인 작품은 47명이 그린 64점의 엄청난 규모의 합작이 탄생했습니다. 원작의 명성(=머릿수...)에 지지 않는 대규모라고 할 수 있지요. 게다가 성의와 애정이 듬뿍 들어간 존잘 연성들로 가득 차서 작품 모집 기간 동안 저만 보기 아까워서, 빨리 공개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릴 정도였습니다.


합작 공개 페이지 링크: http://collabo12.tistory.com/2

백문이 불여일견, 그 장관을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멋진 기획이 가능했던 이유는 전적으로 참가해서 훌륭한 작품을 제공해주신 분들, SNS로 널리 확산해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몇 번이고 감사의 말씀을 올려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압도적인 양에 막바지에 힘이 딸려 동생 위부인의 도움을 받아서,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사적인 야망 중 하나로는 이 합작이 국내외에 널리 확산되어 코에이가 다시 한글화에 대해서 숙고해줄 자극이 되었으면 합니다만...(ㅎㅎ) 그러지 않더라도 한국 게이머들도 이렇게 무쌍시리즈를 사랑한다는 점(그리고 이렇게나 존잘밭이라는 점!!)이 널리 알려졌으면 합니다.

여담이지만, 모집 도중에 왜 건담무쌍이나 원피스 해적무쌍 등은 포함하지 않았냐는 문의가 가끔 있어서 첨언하자면, <진 삼국무쌍 시리즈>, <전국무쌍 시리즈>, <트로이무쌍>, <무쌍오로치 시리즈>로 제한한 것은 코에이의 오리지널 무쌍 타이틀들이고 외부 작품과의 프랜차이즈는 혼동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피스나 건담 캐릭터라면 건담 합작이나 원피스 합작에서 따로 모집해도 충분하니까요^^


저는 주최, 편집 외에도 장비와 가라샤로 참가했습니다. 장비는 원래 그릴 생각이 없었는데 유비와 관우가 신청되어서 장비도 넣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가라샤는 원래 좋아하던 캐릭터였고, 성우 시카노 쥰씨가 올해 안타깝게 고인이 되신 사마의 성우 타키시타 츠요시씨의 부인 되시는 분이고 실제 무쌍오로치2에 두 캐릭터 사이의 특수대화도 있어서, 나름 추모의 의미를 담아 그려봤습니다. 






진삼7 맹장전에 여포 딸이 추가되었으니까... 동인


틀림없이 이런 가정문제가 발생하겠죠. 


맑스와 왕녀 잡상


-마운트스튜어트 엘핀스톤 그랜트 더프 경이 카를 마르크스와의 만남에 대해 영국 제 1 왕녀 빅토리아에게 올린 개인 편지-

당시 영국 군주(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이자 프로이센 왕세자(독일제국 선포 이후 독일제국 황태자, 즉위 후 독일 황제 프레드릭 3세가 되는)의 아내인 빅토리아 아델라이드 메리 루이사는 영국 정치가 더프에게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을 표했습니다. 가족들에게 "비키"라고 불리던 빅토리아 왕녀는 어릴 때부터 영특하고 지적이었으며 시집 간 독일에서 여자아이들을 위한 고등교육기관과 간호사 학교를 설립하고 예술과 교육을 후원하고,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있어 아들 빌헬름 2세와 정치적으로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빅토리아 왕녀는 당시 여론을 들끓게 했던 마르크스에도 흥미를 가졌던 듯 합니다. 

이에 따라 더프는 1879년 1월 31일 데본셔 클럽에서 마르크스와 만나 바로 다음날 왕녀에게 편지로 보고를 올렸습니다. 더프는 회고록에 수신자에 대한 내용은 전부 삭제한 이 편지의 일부를 삽입했습니다. (1873-1881년 일기의 기록들)

이 편지의 전문은 1949년 7월 15일자 타임즈지 문예부록에 A. 로스슈타인의 "카를 마르크스와의 만남"에서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편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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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2월 1일

마담,

제가 근래에 황태자비 전하를 뵐 영광을 누렸을 때 전하께서는 카를 마르크스에 대한 호기심을 비치시며 그를 아느냐고 여쭈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마르크스와 교제할 기회를 가지고자 하였으나, 그 기회는 어제 오찬 때에 그를 만나 세 시간을 함께 보내기 전까지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마르크스는 단신에 다소 작은 몸집이고, 회색 머리카락과 턱수염이 아직 검은 콧수염과 기묘한 대조를 이루었으며, 얼굴은 둥근 편이고 이마는 잘 생겼습니다. 눈빛은 다소 엄혹하나 전체적인 인상은 호감이 가는 편으로, 경찰이 생각하는 것처럼 요람 속의 아기를 잡아먹을만한 신사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매우 박식한, 아니 조예가 깊은 인물로, 고대 슬라브어를 비롯한 변두리 학문을 향한 관심의 계기였던 비교문법에 더 흥미가 많았습니다. 화제는 기발한 방향으로 틀기도 하고 종종 드러나는 메마른 유머감각이 다채로움을 더했는데, 가령 헤제키엘의 비스마르크 공에 대한 책을 언급할 때에는 부슈 박사의 책과 비교하면 마치 구약성서인 것처럼 말할 때 그러하였습니다. [G. 헤제키엘의 1869년 저서 <Das Buch vom Grafen Bismarck>를 의미]

전체적으로 별다른 열정은 드러나지 않는, 매우 현실적이고 다소 냉소적이면서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마르크스가 과거나 현재에 관해서 말할 때에는 매우 정확한 고찰을 보이지만, 미래에 관해서는 막연하고 불충분한 내용을 말했습니다.

마르크스는, 타당한 근거를 이유로 러시아에서 멀지 않은 기간 내에 큰 붕괴가 일어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위에서부터의 개혁이 원인으로, 오래되고 부패한 체제가 견디지 못해 전체적으로 무너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체제를 대신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생각이 없었고, 단지 러시아는 오랫동안 유럽에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다음에는 그 운동이 독일에도 퍼져 현 군사제도에 대한 반란의 형태로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하지만 어떻게 군대가 사령부에게 반란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마르크스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현재 독일에서는 군대와 국가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잊으셨군요.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사회주의자들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훈련된 병사입니다. 군대라고 했을 때 상비군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비군(Landwehr)도 고려해야 합니다. 상비군 내에도 많은 불만이 쌓여있고요. 가혹한 규율로 인한 자살율이 이렇게나 높았던 군대는 없었습니다. 자신을 쏘는 지점에서 상관을 쏘는 단계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으며, 한 번 그런 선례가 생기면 같은 일이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유럽의 지도자들이 다 함께 군비감축에 협의하여 국민들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면, 당신이 어느 날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혁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르크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하지만 지도자들은 그렇게 못합니다. 온갖 두려움과 질투 때문에 불가능하지요. 인민의 부담은 점점 심해질 것이며, 과학의 발전이 전쟁기술을 촉진하고 발달시킴에 따라 매년 더 많은 이들이 전쟁이라는 값비싼 엔진에 동원될 것입니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입니다." 저는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진정 막대하게 비참한 상황이 아닌 한 본격적인 민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마르크스는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지난 5년 동안 독일이 얼마나 큰 위기를 겪고 있는지 전혀 모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혁명이 일어나서 원하는대로 공화정 정부를 설립했다고 칩시다. 그래도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이 말하는 특유의 사상이 실현되기에는 요원하지 않습니까?" 마르크스는 답했습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모든 위대한 움직임은 느립니다. 영국의 1688년 혁명처럼 더 나은 시대를 위한 발판에 불과합니다. 먼 길의 중간단계일 뿐이죠."

이상의 내용으로 전하께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유럽의 가까운 미래에 대해 알려드릴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지당히 위험한 광적인 군비지출 상황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면, 마르크스의 생각은 위험이 되기에는 너무나 몽상적입니다.

그럼에도 만약 다음 10년 안에 유럽의 지도자들이 이 악순환을 해결해 문제의 혁명을 막지 못한다면, 저는 적어도 이 대륙의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는 절망할 것입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대화 도중에 몇 번이고 황태자비 전하와 황태자 전하에 대해 경의와 예의를 갖추고 말했습니다. 특정 저명인사들에 대해 경의를 갖추지 않고 말할 때에도 날카롭고 톡 쏘는 비판은 풍부할지언정 마라(역주: 프랑스 혁명의 장-폴 마라) 식의 격하고 야만적인 느낌은 없었습니다.

인터네셔널 운동과 관련된 끔찍한 사건들에 관해서는 여느 점잖은 사람과 같은 견해를 보였습니다. 

또한 혁명과 연관된 망명자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시사해주는 일화도 언급했습니다. 그 몹쓸 노빌링(역주: 빌헬름 1세를 암살할 의도로 습격한 카를 노빌링)이 영국에 있었을 때 마르크스를 만나고자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저를 만나러 왔다면 기꺼이 맞아주었을 겁니다. 노빌링은 드레스덴 통계국 직원이라는 명함을 내밀었을 것이고 제 관심분야도 통계니 매우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테지요. 만났더라면 참으로 즐거운 입장이었을텐데!"

마르크스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말씀드리자면 비록 저와 견해는 정반대지만 전혀 불쾌감을 주지 않았으며, 다음에도 기꺼이 다시 만나고 싶은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을 거꾸로 뒤집을 위인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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